여러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상투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지난 며칠간 이 자리가 주는 막중한 책임감에 대한 두려움에 떨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함께 펼칠 밝은 미래를 위한 각오를 다지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철도는 현재, 하루 1,400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동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체 국민의 거의 30%에 달하는 분들이 매일같이 철도를 이용한다는 의미입니다. 1899년 이후 100년이 넘는 우리 철도가 이뤄온 성과입니다.
이 거대한 성취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오신 선배 철도인들과 우리 코레일 가족 여러분께 맨 먼저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철도 가족 여러분! 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모든 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이에 기반한 기술 변화의 규모와 속도가 우리의 상상의 범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당장 내일 어떤 사회가 도래할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거대한 기계장치산업이자, 복잡한 정보통신산업이며, 다양한 문화와 공간을 연결하는 서비스산업으로서 철도의 미래는 어떤 것일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당장 우리 눈 앞의 변화도 만만치 않습니다. 10년의 시간을 돌아서 고속철도 운영이 다시 통합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철도수송서비스의 확대 필요성이 전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노동존중사회 구현이라는 새로운 화두는 종사자수 4만 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최대 공기업 코레일의 노사관계에 시선을 모읍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인명사고는 국민의 이동수단으로서 철도의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을 낳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 발생한 차량납품 지연사태는 우리 공사의 과거 관행에 대해 국민들이 가하는 뼈아픈 채찍질입니다.
우리 안에 부족했던 것은 무엇인지 반성하고, 현안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후세대에게 남겨줄 바람직한 철도는 어때야 하는지 계획해야 합니다.
이에 저는 이 자리에서 제가 생각해온 것들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상의드리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철도는 국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공적 수단입니다. 그 수단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이는 그 공적 정당성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종사자들의 실수와 부주의에 의한 것이고,이로 인해 종사자의
생명마저 위협한다면, 그러한 교통수단은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안전의 보장을 위해서는 첨단 안전설비와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를 늘리고, AI와 로봇을 활용한 과학적 안전관리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제도와 작업 환경 전반 재설계도 필요합니다.
이런 과제들은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실천이 되어야 하며, CEO로서 저는 이에 대해 조금도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의 확대, 시스템의 구축만으로 안전이 완벽하게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과거의 사례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관행이 문제이고 인식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정시운행보다 안전운행, 사고의 빈도보다 사고의 심각성 중시, 책임추궁보다 원인규명 우선 등을 위한 조직 구성원 내의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지극히 올바른 방향이지만, 자칫 이것이 구호로만 남아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문화는 복잡한 문서 상의 매뉴얼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실천을 통해 몸으로 체득할 때에 형성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안전지침의 공동토론과 학습 등을 통한 확산과 더불어 현장의 목소리가 경영진의 의사결정으로 직결되는 환류가 반복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저는 임기 중에 이러한 안전문화의 정착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실천하고자 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통합은 국민들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4년, 고속철도가 개통된 이후 생겨난 여러 불편으로 인해 운영의 분리가 진행되었고, 다시 분리 운영으로 인한 비효율을 근거로 현재의 통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통합을 통해 우리가 이뤄야 할 것은 불편과 비효율의 제거를 통한 국민 부담의 감소, 더 나아가 한층 개선된 서비스의 제공입니다.
주요 노선의 좌석 공급을 확대하고, 통합 예매시스템의 조기구축을 통해 국민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겠습니다.
더 나아가 고속철도가 전국의 더 많은 지역을 빠르고, 안전하고, 편리하게 연결하는 간선교통망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철도의 통합과 함께 진행되는 조직의 통합도 조금의 잡음이 없이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통합은 제도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고, 통합의 완성은 단일한 조직표가 아니라, 하나의 팀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 공사의 영업적자와 누적 부채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고속철을 제외한 일반철도, 화물철도 등의 만성적인 적자가 주요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고 있는 것은 재무적 적자와 더불어 절대적인 수송서비스의 축소입니다. 고속철 도입 이전에 1억명에 달하던 일반철도 승객수송량은 현재 그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공사화 당시에 5천만 톤 철도 화물수송량은 현재 채 2천만 톤이 되지 않습니다. 고속철, 버스, 트럭 등과의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반철도, 화물철도를 위한 철도거리는 고속철도의 4배가 넘는 3,400km에 달합니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고, 만성적인 적자를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커다란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아이디어를 짜내야 합니다. 고속철과 무궁화호, 철도와 지역버스 간의 연계수송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철도기반 국가간선교통네트워크 구축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콘텐츠 결합을 뛰어넘는 실질적 MaaS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마을호의 고속철도 대체수단화, 현재 진행 중인 에너지트레인 활성화 등을 통한 서비스 다변화도 꾀해야 합니다.
용산정비창을 비롯한 유휴 부지 개발, 지역단위 역세권 개발 등 공사의 경영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여러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거안정과 물가안정을 위한 정부정책에도 적극 부응하며 대한민국 대표 공기업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철도는 탄소 배출이 현저히 적은 저탄소 친환경 교통수단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거창한 선언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철도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운임, 노선, 환승 편의, 시간표 등 국민이 불편 없이 철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서비스의 빈틈을 성실하게 채워나가겠습니다.
우리 철도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에도 동참해 나갑시다.
신재생에너지를 전국으로 운송하는 ‘에너지트레인’을 개발하고, 에너지 자립을 위한 자체 철도발전소를 구축하겠습니다. 에너지 저감 효과가 높은 고속열차와 전동열차 도입을 비롯해 철도부지를 활용한 태양광 설비를 늘려
친환경 인프라를 확장하겠습니다.
코레일은 자회사를 포함하여 4만여 명이 함께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노사갈등이 반복되는 조직에서 안전도, 혁신도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저는 노동조합을 대화의 상대를 넘어 경영의 파트너로 생각하겠습니다. 주요 현안을 함께 논의하는 상생과 협력의 노사관계를 지향하겠습니다.
특히 AI와 디지털 기술 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업무 변화와 고용 문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을 연결하는 본부별, 업역별 모니터링 조직의 가동이 필요합니다.
사장뿐만 아니라 관련 관리조직이 함께 참여하여 문제의 인식도, 해결방안의 모색도 같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감이 되고, 공정해지며, 신뢰가 구축됩니다.
그래서 끝내는 ‘노동존중의 회사 만들기’를 고민하는 경영진, 그리고 ‘안전, 환경 및 효율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 제고’를 고민하는 노조가 상생하는 한국철도공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경의선과 동해선, 그리고 언젠가 이어질 유라시아 대륙 철도···.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이야기가 아님을 압니다.
그러나 기회는 항상 준비된 자에게 옵니다. 기술 표준 정비, 노선 설계, 운영 매뉴얼 구축 등 실무적 준비를 꾸준히 이어가겠습니다.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등 유관 국제기구와의 협력도 강화해 한국철도가 대륙 철도 네트워크에 연결될 기반을 다지겠습니다.
철도가 한반도 평화의 실질적 수단이 되는 날을 위해, 조용하지만 흔들림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코레일 가족 여러분, 저는 지난 30여 년간 연구원과 학교에서 물류와 교통, 철도 산업의 발전 방향을 연구하고 교육해 왔습니다. 당연히 저는 여기 계신 분들만큼 현장을 잘 알지 못합니다. 강의실에서 글로
배운 철도와, 매일 새벽 레일 위에서 시작되는 철도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현장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여러분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언제든 발로 뛰며, 여러분과 함께 호흡하겠습니다.
그러한 저를 여러분이 가르쳐 주십시오. 20년간 젊은 학생들의 스승을 자처한 저에게 스승이 되어 주십시오. 지금부터는 여러분이 저의 참 스승이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긍심을 갖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지는데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존중받는 코레일을 만들어 갑시다.
감사합니다.
2026년 3월 3일
한국철도공사 사장 김 태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