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자유

코 끝에 봄이
피어났다

INTRO

속단할 수 없는 취향의 끝이 바로 후각이다.
같은 향을 맡고도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서로를 보며 참으로 여러 번 놀랐다.
신비롭고 오묘한 향기의 바다에서 ‘나만의 시그니처 향’을 완성하며,
두 남자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향료 블렌딩에 빠져들었다.

글. 윤진아 사진. 조병우

나 이런 향기 좋아하네?!

공방 가득 들어찬 향료를 둘러보는 입사동기의 얼굴에 기대가 가득하다. 공기의 흐름과 냄새부터 확연히 달라지는 향수공방에서 두 남자가 ‘나만의 향기’ 만들기에 도전했다. 최애 향기가 ‘페브리즈 향’이라는 문주홍 주임에게 오늘 만들 향수는 무려 ‘인생 첫 향수’라는 의미가 있다.

“지금껏 향수를 사본 적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향이 뭔지도 잘 몰랐어요. 기억에 남는 좋은 냄새란 그저 세탁세제나 섬유탈취제 정도랄까요?(웃음) 오늘 내 손으로 만들어볼 향수가 ‘향·알·못’이었던 제게 향기로운 액세서리가 되어주길 기대합니다.”

평소 향수를 즐겨 뿌린다는 강명재 주임은 코끝으로 하는 기분전환이 꽤나 즐겁다고 했다.

“과하지 않고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향을 좋아해요. 저를 아는 분들의 기억 속에도 제가 미소를 머금고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요. 내 인상을 선명하게 각인해줄 ‘강명재 시그니처 향’, 직접 만들어보겠습니다!”

매력 증폭해줄 ‘시그니처 향수’ 커밍순

고민과 탐색을 거듭하며 나만의 향기를 찾아가는 모습이 더없이 진지하다. 향수 제작의 첫 단계는 시향이다. 종이에 향료를 살짝 묻히고 알코올을 날린 후 향을 맡아 마음을 끌어당기는 향을 6~7개 고른다. 우선순위와 비율을 정할 땐 오래 고민하지 말고 내 코의 감각에 맡기는 게 좋다. 이날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두 사람을 도와준 조향사는 “신기하게도 시향하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줄 몰랐던 향에 끌리는 경우가 많다”라며 “그동안 자신의 취향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귀띔했다.

“내 코와 뇌의 선택을 믿어보자!”라며 강명재 주임과 문주홍 주임이 본격적인 시향에 나섰다. 시향지를 겹쳐 맡아도 보고 따로 맡기도 하면서 최적의 향을 찾아 나선 두 사람. 여러 재료의 향을 맡다 보면 변별력이 사라지고 후각이 마비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커피 원두로 환기하며 코를 정화하면 도움이 된다.

향수는 톱(Top), 미들(Middle), 베이스(Base) 3개의 노트(Note)로 구성되는데, 휘발되는 시간에 따라 등장하는 향을 말한다. 톱 노트는 뿌린 직후 느껴지는 향이다. ‘하트 노트’라고도 불리는 미들 노트가 메인 향이다. ‘과연 하루 종일 맡아도 좋을까?’라는 선택지까지 통과했다면, 머릿속에 남은 단 하나의 그 향을 미들 노트로 정하면 된다. 베이스 노트는 뿌린 후 2~3시간 뒤부터 느껴지는 잔향으로, 가장 뒤늦게 등장해 가장 오래 지속된다.

문주홍 주임은 가볍고 상큼한 비누 향을 기대하며 듀베리, 망고, 살구, 무화과 향료를 골랐다. 잔향을 책임질 베이스 노트는 장고 끝에 싱그러운 베르가모트로 결정!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남자 향수’라는 난제를 기필코 풀어보겠다는 의지가 결연하다. 강명재 주임은 고급스러우면서도 섹시한 향을 목표로 리슬링, 유자, 체리, 통카빈 향료를 선택했다. 과일·허브·꽃향기가 섞인 리슬링 향을 미들 노트로 하고, 향의 깊이와 온기를 더해주는 앰버 향료를 베이스에 추가해 클래식하면서도 청량한 느낌의 향을 설계했다.

나를 각인시키는 가장 매력적인 방법

향수의 메인과 베이스가 될 향을 고르고 추가할 향료의 목록까지 만들었다면, 호감도에 따라 배합할 향료의 양을 정할 차례다. 최적의 비율을 위해 각 향료의 양을 계산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한 방울씩 미세한 양을 조절하는 두 사람. 같은 조합이라도 비율에 따라서 전혀 다른 향이 나는 만큼 0.1g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며 눈을 빛낸다. 단독으로는 별다른 향을 낼 수 없지만 다른 향료를 더욱 풍성하게 하거나, 피부에 밀착하면 독특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향료도 있어 감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정확한 설계와 계량이 중요한 공정이라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네요.(웃음) 상상했던 향과 1차 블렌딩 후 직접 맡아본 향이 너무 다른 것도 충격입니다.”

약간의 오차가 생기기도 했지만, 조향사의 도움을 받아 애초 설계대로 배합을 완수했다. 블렌딩이 끝났다면, 향료별 무게를 재서 공병에 옮겨 담으면 된다. 모든 향료를 섞은 뒤 보존·확산 역할을 하는 에틸알코올을 추가하면 나만의 향수 완성!

한 방울 한 방울 섬세하게 향기를 쌓아올리던 강명재 주임이 미션을 끝내자마자 긴장이 풀린 듯 격하게 손을 터는 바람에 또 한 차례 웃음꽃이 퍼졌다. 과일 향 뒤에 따라오는 나무 향이 무게를 잡아주고, 인위적이지 않은 꽃 향이 생기를 더하니 “이게 바로 천상의 향기”라며 문주홍 주임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향수병에 이름과 제조일자까지 라벨로 붙여놓으니 기대 이상의 성취감이 밀려든다. 마침내 찾아낸 ‘진짜 내 향기’를 입고 매일의 즐거움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INTER
VIEW

문주홍 주임 ㅣ 고속전기사업단 광명전기사업소

제가 새콤달콤한 향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네요. 미처 몰랐던 내 취향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여러 향을 맡아본 끝에 도달한 나의 첫 향수처럼, 진중하고 매력적인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강명재 주임 ㅣ 고속전기사업단 지제전기사업소

평소 우드 계열의 향수를 즐겨 뿌려요. 그동안 안 써 봤던 향에 도전해봤는데, 인생 향수를 만났네요! 머릿속으로 상상한 이미지를 실제 향수로 구현해내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과감한 도전 끝에 탄생한 ‘강명재 시그니처 향’, 나를위한 최고의 선물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