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어때
INTRO
나긋한 봄바람에 나뭇가지마다 꽃을 툭툭 틔워내고,
오래된 건물들은 기다렸다는 듯 지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달리 ‘목포의 눈물’이었을까.
호남 곡창지대였던 목포는 개항 후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일제 수탈의 관문이 돼야 했고 강제동원과 전쟁의 아픔도 겪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치지도 않고 봄을 기다리는 이유를, 목포 타임슬립 여행이 설명해 준다.
글. 윤진아 사진. 정우철
낮은 지붕이 오밀조밀 어깨를 맞댄 골목길.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길바닥에 누워 놀던 고양이 두 마리가 객들에게 살갑게 다가와 길 안내를 시작한다. 다정한 생명의 환대와 포근한 봄바람에 출발부터 마음이 따숩다. 시화골목이 있는 서산동은 ‘가장 목포다운 동네’로 소개된다. 조그마한 항구였던 목포의 원형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골목여행의 시작점은 영화 <1987> 촬영지로 잘 알려진 ‘연희네슈퍼’다. 초록색 간판 아래 낡은 미닫이문을 여는 순간, 수십 년 전 어느 봄날로 돌아가 저마다의 연희를 만나게 된다. 슈퍼 안에는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과자, 달력, 포스터, 흘러간 브랜드의 제품 등등 1980년대 구멍가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슈퍼 앞에선 그 유명한 밥통 쫀드기 가게부터 문구사, 사진관, 세탁소, 아이스크림 가게가 연달아 추억을 선사한다.
마지막 평지인 슈퍼를 지나면 내내 가파른 오르막이다. 서산동은 일제강점기에 형성됐다.
일제가 수탈기지로 삼은 목포에 도로와 철도가 건설되자 사람이 모여들어 인구가 폭증했다. 평지는 일본인이 차지했고, 조선인은 산비탈로 밀려났다. 언덕배기에 웅크린 시화골목은 옛 시간을 담담하게 품고 있다. 오래된 문짝이며 벽돌 등 낡고 삐걱거리는 일상들을 수집해 추억 속 모습 그대로 서산동을 복원해놓았다. 아침이면 물지게꾼이 오르내리던 비탈길이며 매서운 바닷바람을 달래주던 연탄아궁이까지, 모든 게 풍족해진 요즘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고단했어도 정이 가득했던 그때 그 시절로의 시간여행은 지루할 틈이 없다. 동네 가장 높은 곳엔 과거 보리를 타작했던 보리마당이 있고, 그 아래로 세 갈래의 좁다란 골목이 바다를 향해 흐른다. 쪽빛 바다가 길러낸 예술의 숨결도 느껴봐야 한다. 두 사람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의 담벼락에 지역 예술가들과 손잡고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시와 그림으로 새겨두었다. ‘나주에서 쌀 가지고 와 사람들 주고 그냥 그렇게 살았다’며 ‘늙어서 아픈 게 그라제 아픈 게 숭이제’라는 85세 손o애 힐머니, ‘7남매 낳아 새끼들 갈치느라 고생하면서도 겁나게 잘해준 영감이 고맙다’는 86세 함0섭 할머니 모두가 실존인물이다.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속에도 사람냄새 가득 품어온 주민들의 삶이 골목을 가득 채운다.
담벼락에 새긴 삶을 읽으며 비탈을 오르다 뒤를 돌면, 바다다! 구불구불한 골목 사이로 봄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가 펼쳐지면 여행자 마음에도 파도가 일렁인다. 가난했지만 정다웠던 이웃과 체온 나누며 살던 추억이야말로 시화골목이 여행자들에게 선물하고자 하는 주된 전시품이리라.
뭍과 바다 사이에 우뚝 솟아올라 사방을 한눈에 굽어보는 유달산은 목포의 진산(鎭山)이다. 목포 어디서나 그 늠름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바위산이라 산세가 장중하고 누각과 쉼터 그 어느 하나도 자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다. 고개만 돌리면 목포 시가지 전체와 앞바다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조망이 탁월한 데다 층층이 기암절벽이 이어져 있다. 정상에 오르면 목포항과 다도해는 물론 인접한 도시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지략이 빛났던 노적봉을 비롯해 전설이 깃든 정자, 마애불, 오포대 등등 둘러볼 곳도 많다. 산 중턱엔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목포의 사랑’에서 ‘목포의 눈물’로 바뀐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원도심으로 내려가면 또 다른 옛이야기들이 기다린다. 개항 후 곡창지대 호남의 관문에는 일본인들이 몰려들었다. 156가구, 600여 명이 살던 작은 마을에 일본인 거류지가 형성됐고, 유곽이 들어섰다. 1910년 국권침탈 후에는 수탈의 관문이 되어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들어섰다. 건물이 멈춰 선 곳에 시간만 홀연히 흘러온 까닭에 건물·골목·거리 602개 지번이 통째로 문화재(등록문화재 제718호)가 됐다.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유달동과 대성동의 11만 4,038m²에 달하는 지역이다. 도심 전체가 거대한 역사박물관인 셈이다. 개항 이후 조성한 근대 시가지의 바둑판식 도로와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을 비롯해 일본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소학교, 적산가옥, 방공호 등을 도보투어로 돌아볼 수 있다.
100년 넘은 역사를 품은 옛 건축물들이 가득한 이곳은 <파친코>, <우리들의 블루스>,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등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현재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운영 중인 구 일본영사관은 1900년에 지어진 목포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다. 목포의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됐고 규모가 크며,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물이다.
역사의 고비마다 ‘눈물’을 딛고 일어선 목포는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져 또 하나의 목포를 만들어가고 있다. 요즘 목포시민들은 ‘목포의 눈물’ 노래 끝부분을 원래 제목대로 ‘목포의 사랑’이라고 부른다. 눈물이 희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늙지 않는 바다 위로 매일 새로운 태양이 솟아오르는 2024년 봄. 넘실거리는 새 낭만 위에 올라선 목포가 반갑다.
옛 동목포역 부지엔 무궁화호 객차가 멈춰 서서 시민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기찻길 따라 늘어선 꽃나무가 망울을 틔워내며 좋았던 옛 세월을 더듬는다. 낡은 기관차 앞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촌로들이 수십 년을 간직해 온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웃음꽃을 피운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흥을 꽃피웠던 사람들의 마을답다.
도로 위에 철로가 있어 ‘칙칙폭폭’ 기차소리가 온 동네에 퍼지던 시절, 동목포역은 실제 기차가 멈추던 간이역이었다. 1953년 간이역으로 문을 연 동목포역은 목포고와 목포상고 통학생들의 발이 되어줬다. 2003년 폐역 이후 철도 폐선부지는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폐열차는 ‘낭만열차 1953’이란 이름을 달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폐열차 3량을 개조한 카페 내부는 실제 기차 의자들을 재활용해 마치 기차를 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모든 자리에 창문이 있어 봄날의 풍경을 내다보며 차 한잔하기 좋다. 기관차 엔진은 식었지만, 새 명패를 단 무궁화호가 낭만 가득 싣고 다시금 기적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