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발령을 받을 때마다 근무지가 바뀌고, 그에 따라 맡는 업무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그 변화가 낯설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안에 우리 회사만의
장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처음부터 배우게 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기본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회사가 ‘한 번의 초심’으로 끝나는 곳이 아니라,
발령지가 바뀔 때마다 n번째 초심을 새로 꺼내 들 수 있는 곳 같다고 느꼈습니다.
저의 첫 발령지는 입석리역이었습니다. 역 이름처럼, 그곳은 제게 ‘바로 서는 법’을 가르쳐준 자리였습니다. 수송원으로 배치된 첫날, 선로와 화차를 바라보며 설렘과 동시에 막막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화차 소리는 더 컸고, 무엇보다 모든 절차가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현장에 나가서 잘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종종 들려왔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대단한 반박을 준비하기보다, 그저 제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처음부터 잘하겠다는 마음보다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하루는 작업 전 점검을 하며 공기 호스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손이 자꾸 미끄러졌습니다. 뒤에서 선배님이 “그건 이렇게 잡아야 해”하고 말했을 때, 제가 여태 하던 방식대로 진행하며 괜히 고집을 부리면 더 위험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한 번만 더 알려주시면 그대로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그날 이후로 같은 상황에서 망설임이 줄어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시선이 바뀐 건 그때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제 마음은 조금 바뀌었습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배우는 일이 부끄러움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확실히 배웠습니다.
입석리역의 시간은 그렇게 작은 반복으로 쌓였습니다. 공장에서 화차를 꺼내고 제동시험을 통해 다른 역으로 발송시키며, 다른 역에서 온 공차를 다시 공장으로 넣어주는 일. 저는 그 속에서 제 몫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무리해서 남들만큼 하려 하기보다, 절차를 지키고 한 번 더 확인하고, 애매하면 묻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게 제가 가진 방식의 초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하지만 게으르지 않게, 겸손하지만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연차가 쌓이면서 “요즘은 베테랑이 됐네”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그 말이 오히려 저를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익숙함은 편해지기 쉽고, 편해지면 기본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을 자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본부에서 사회공헌 업무를 맡은 지 5개월 차에 있습니다. 선로 위의 전호기 대신 컴퓨터 화면과 문서가 제 일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본부에 와서는 공문 한 장을 쓰는 데도 용어가 낯설고, 결재 라인이 헷갈리고, 주위 선배님에게 엑셀 수식을 묻는 일이 일과였습니다. 현장에서는 몸이 먼저 움직이면 되었는데, 여기서는 생각을 정리해 글로 설명하고, 결과를 내야 했습니다. 한때는 ‘내가 이렇게까지 모르나’ 싶어 스스로 작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제 모습은 영락없이 갓 입사했던 입석리역의 서툰 신입 사원과 겹쳐 보였습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n번째 초심이 다시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공헌 업무는 ‘봉사활동을 한다’는 말로만 설명하기엔 책임이 큰 업무였습니다. 한 번의 기획이 지역과 수혜가구에게 어떻게 닿는지, 저의 작은 실수가 누군가에게 불편이 되지 않는지, 주어진 예산을 통해 어떻게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 고민하며 배워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업무에서도 저의 초임 발령 때 배운 태도를 가져오고 싶습니다. 급하게 멋진 결과를 내기보다, 과정의 기본을 지키고, 확인하고, 먼저 거쳐 간 선배님들의 조언을 새겨듣는 것. 일의 성격은 달라도, 결국 제가 지키고 싶은 중심은 비슷합니다.
결론적으로, 초심은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초심은 환경이 바뀔 때마다, 내가 다시 서툴러질 때마다, 조용히 되살아나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초심을 꺼내며 다짐합니다. 낯선 일을 만날수록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게, 배움 앞에서 체면보다 책임을 선택할 수 있게. 발령이 바뀔 때마다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되며, 그 시작이 늘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하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n번째 초심이고, 앞으로 철도생활에 있어 제가 지키고 싶은 다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