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만 되면 어쩐지 더 생각이 난다. 휘몰아치는 파도에 지난날
마음 깊숙한 곳에 간직했던 응어리를 훌훌 털어내기 좋아서일까.
힘차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초심을 다잡기 좋아서일까. 새해 첫 달,
1월을 쏙 빼닮은 강원도 정동진의 이야기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에 있는 정동진 해변. 정동진은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해돋이 명소다. 아주 오래전에는 군사 주둔지의 역할을 했고, 서울 광화문 기준으로 정동쪽에 있어 정동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서울역 기준 KTX로 약 2시간이면 갈 수 있고, 역 바로 앞에 내려서 걸으면 바로 해변일 만큼 접근성이 좋다. 정동진역은 2020년 정동진역이 개통되기 전에는 하루에 소수의 사람만 타고 내리던 간이역이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다. 특히 연말연시면 수십만 명이 다녀갈 정도라고.
정동진역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작 드라마 <모래시계> 덕분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고현정이 경찰에 쫓기며 정동진역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앞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그녀가 타고 떠나야 할 기차가 플랫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기차보다 경찰이 일찍 도착했고, 주인공은 결국 경찰에게 잡힌다. 아무 일 없이 떠나는 기차를 보는 주인공의 안타까운 시선과 정동진역의 분위기가 드라마에 오랫동안 나오면서 정동진역은 <모래시계> 촬영지로 사람들 입에 오르기 시작했다. 정동진역에는 아직도 주인공 역을 맡았던 고현정 배우의 이름을 딴 ‘고현정 소나무’와 정동진 시비, 기차 조형물 등이 갖춰져 있어 여행자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기차를 타고 내리는 시간이 아님에도 사람들이 붐비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동진역이 ‘역’의 역할을 넘어 ‘여행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선명해진다.
정동진 여행의 시작점인 정동진역에서는 일단 사진을 찍어야 한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푸른 동해와 고현정소나무와 시비가 어우러진 풍경은 어느 역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바다와 제일 가까운 역으로도 이름난 만큼 역에서 즐기는 정동진의 풍경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정동진역에서 조금 더 색다른 여행을 하고 싶다면 정동진레일바이크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정동진레일바이크는 정동진역 바로 옆에서 매표 창구가 마련되었는데, 여기서 매표하고 정동진역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면 탑승구에서 레일바이크에 탑승할 수 있다. 레일바이크를 타고 포토스폿에서 찍은 사진은 열차카페에서 사진으로 찾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친구, 가족, 연인과 푸른 바다를 보며 색다른 추억을 남기기 좋다.
정동진에서 또 하나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일출이다. 원래도 일출이 아름답기로 유명했지만, 일출이 떠오르는 방향으로 크루즈 모양의 호텔이 들어서면서 일출 명소로 입소문을 탔다. 여명이 짙어지며 푸른 동해와 크루즈 모양의 호텔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정동진 해변에는 해가 뜨기 전부터 많은 사람이 몰린다. 카메라를 들고 대기 중인 사진가들의 모습도 보인다.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정동진 해변 앞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괜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건 새해 첫날의 좋은 기운이 전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구름 사이를 뚫고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정동진 해변에서는 그 기다림마저도 즐겁다. 기다리는 동안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를 넋 놓고 바라보는 재미, 정동진역을 지나는 기차를 바라보는 재미, 먹이를 찾아 힘차게 날갯짓하는 갈매기 떼를 바라보는 재미가 충만해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기 때문.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기다리던 일출이다. 기다린 시간이 있어서일까, 새해 첫날이라서일까, 새로운 목표를 다잡을 수 있어서일까. 유독 반갑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