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찾아오는 크리스마스. 길고 지독했던 무더위가 지난 지 겨우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시기만 되면 발걸음 하나하나에 설렘이 묻어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모든 식당과 카페, 번화가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오고, 부지런한 집은 10월 말부터 가족과 두런두런 앉아 크리스마스트리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세상이 살기 팍팍해진 건지, 세태가 변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 그런 풍경을 찾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그냥 지나치는 크리스마스는 섭섭하기만 합니다. 마침, 제가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취재를 핑계로 당일치기로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바로 경북 봉화에 위치한 분천역 산타마을입니다. 2013년 스위스의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맺은 후 산타마을이라는 콘셉트로 개발된 분천역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관광지였습니다. 마을 전체가 빨간 지붕으로 통일돼 있어 마치 산타할아버지가 빨간 털모자를 쓰고 있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아직 9월이라 크리스마스 시즌을 준비하는 중이었습니다. ‘너무 빨리 왔나?’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제자리에 전시되기 전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루돌프와 산타할아버지를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산타마을의 하이라이트는 뭐니해도 역시 분천역 역사였습니다. 백호 인형이 늠름하게 앉아있는 광장을 지나 역사로 들어가니 아담하고 이쁜 맞이방이 있고 그 옆으로 느린 우체통이 있는 산타우체국이 있었습니다. 시즌이 되면 레일바이크도 운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주변으로 백호, 루돌프, 산타클로스 등 여러 포토존이 있어 기차를 기다리며 인생샷을 건질 포인트가 많았습니다.
분천역이 유명한 것은 산타마을뿐만 아닙니다. 이곳은 백호를 본떠 만든 기관차가 이끄는 V-train이라 불리는 백두대간협곡열차가 다니는 곳이기도 합니다. 기관차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서둘러 열차에 탑승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느린 기차인 만큼, 가는 길 협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양옆 유리가 통유리입니다. 좌석도 일반 좌석이 아닌 옆으로 앉아 백두대간의 가을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가장 뒤 열차인 3호차는 뒤쪽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또 다른 풍경을 보며 갈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다면 3호차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또 좋았던 점은 철암까지 가는 길에 군데군데 정차하는 역이 많은데, 그 역마다 스토리가 다 있었고 함께 동승한 직원분이 그 스토리를 설명해 주신다는 점이었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돈을 모아 만든 양원역,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이라는 유명한 시를 쓴 역무원이 일했던 승부역 등 마치 투어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승부역에서는 열차 승객을 대상으로 간이 장터도 열려 승객들이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멋진 풍경을 보며 주전부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참지 못하고 막걸리와 감자떡을 먹었습니다. 협곡을 안주로 마시는 막걸리는 가히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어느덧 도착한 철암. 이곳 또한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많았지만, 지면의 한계에 여기에 담을 수 없음이 아쉬울 뿐입니다.
취재 때문에 했던 여행이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올해 했던 여행 중 손에 꼽았던 여행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점점 낭만이 사라져가는 크리스마스, 분천역 산타마을에서의 색다른 여행으로 잃어버린 낭만을 찾는 건 어떨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