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자유
INTRO
하얀 설기 위에 오색 꽃이 활짝 피었다.
부산의 한 쿠킹스튜디오에
‘코레일 일일떡집’이
열렸다. 치열하게 달려온 동료들을 위해
김상희 대리가 신청한 이벤트다.
몸에 좋은 재료만 골라 넣은 떡케이크엔 서로에게 보내는
달달한 응원이 겹겹이 포개졌다.
글. 윤진아 사진. 이승헌 촬영협조. 푸리타
“이게 웬 떡이야?! 나 어릴 땐 쌀이랑 콩고물만 있으면 끝이었는데, 요즘엔 별걸 다 넣네~”
“좋은 날 떡 돌리는 게 우리 풍습이잖아요. 곧 추석도 다가오고, 우리 팀에 좋은 기운 팍팍 불어넣어야죠. “부산경남본부 경영인사처 유일 여직원만으로 구성된 노무팀은 모처럼 짬을 낸 이 자리가 무척 기대된다고 했다. 인사이동·인원감축 여파로 일복이 터져, 적은 인원으로 서로 도와가며 일해왔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업무도 많고 인원도 한 명 줄어 모두 힘든 시기예요. 스트레스를 타파할 돌파구가 필요했는데, 마침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신청했죠. 우리 업무가 사람도 자주 바뀌고 즉시성 있는 일처리를 요구해 힘들지만, 이렇게 틈틈이 에너지를 충전하며 더 힘내자고요!”
똘똘 뭉쳐 지내면서 직장 선·후배를 넘어 소울메이트가 됐다는 세 사람은 “소중한 추억이 하나 더 생기겠다”며 싱글벙글 앞치마를 동여맸다.
반죽을 찌는 찜기에서 하얀 김이 오르고 고소한 냄새가 공방을 가득 채운다. 한 겹 한 겹 꽃잎을 짜 올린 백설기 컵케이크는 강낭콩, 백년초, 멥쌀가루, 말차가루 등 모든 재료가 우리 몸에 이로운 것들이다. 천연 식재료로 원하는 색도 다 낼 수 있다. 비트와 복분자로 빨간색과 분홍색을 낼 수 있고, 단호박과 치자가루는 노란색, 청치자가루는 파란색이 된다. 짤주머니, 데커레이션 팁 등등 기본적인 도구 사용법을 익히고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갔다.
퇴근 후엔 육아로 고전하느라 이렇다 할 취미생활을 못 했던 이남주 팀장은 오랜만에 손기술을 발휘할 생각에 설레는 마음이다. “평소 요리를 좋아해요. 같은 재료, 같은 용량으로 만들어도 사람 손에 따라 다른 모양, 다른 맛이 나는 게 재밌거든요.”
장미, 백일홍, 해바라기, 카네이션, 라넌큘러스···.
만들다 보면 기분까지 화사해지는 앙금꽃은 예쁜 만큼 손도 많이 간다. 파이핑(짜기)이 전체 공정의 시작이자 반이다. 꽃봉오리, 잎사귀 순서로 파이핑 기법을 익히는 세 사람. 짤주머니로 앙금을 짜려면 악력에 의존해야 해서 은근히 힘이 많이 들어간다. 해바라기 안에 콕콕, 숨죽이며 씨앗을 짜내던 김상희 대리가 “내일 손 못 쓰는 거 아냐?!”라며 심호흡을 가다듬는 통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막내 한윤정 대리는 평일엔 수영, 주말엔 클라이밍을 즐기는 취미 부자다. 쿠킹클래스는 처음이지만, 오늘 숨은 재능을 발견했단다. 새로운 형태의 꽃들도 속전속결! 연습 없이 척척 완성해 팀원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꽃잎을 너무 많이 만들어 씨앗 짤 자리가 없다는 강사의 지적에도 당황하지 않고 “씨앗 자리, 바로 만들어보겠습니다!” 침착하게 대처하는 막내가 선배들은 마냥 대견한 모양이다. “역시 우리 막내! 흔들리지 않지!” “적성이 해결사야, 잘 컸어~” 쉬지 않고 기를 불어넣어 줬다.
“험한 것이 나와버렸네···”, “멈춰! 너무 묵직해서 뭉개지잖아”, “선생님, 봉오리가 계속 커지는 게 맞아요?”
고군분투 끝에 너나 할 것 없이 손 마디마디 쌀가루와 앙금 천지다. ‘손만 보면 다들 떡 명인’이라는 강사의 말에 실소가 나온다. 앙금의 색과 농도를 맞추고 짤주머니를 누르는 손길이 점차 노련해진다. 꽃 모양이 마음에 안 들면 짤주머니 안에 넣어서 다시 짜면 되니 부담은 내려놓아도 된다. 같은 것 같지만 꽃 생김새가 저마다 다 다르다. “다 자신만의 꽃이 있으니, 마음에 드는 모양이 나올 때까지 하면 된다”는 강사의 격려가 위안이 된다.
올가을 결혼을 앞둔 김상희 대리는 부케 느낌의 라넌큘러스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야심찬 계획과 달리 꽃잎이 만두피 모양으로 변해 당황했지만, ‘짤주머니 리셋 찬스’로 기어코 인생작을 만들어냈다. “여러 업무가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통에 데이트할 시간이 없어 미안했는데, 예비신랑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네요. 동료, 가족 모두와 나눠 먹고 싶을 정도로 완벽한 디저트라서 조만간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싶어요.”
사부작사부작 꽃을 모두 피워냈다면, 미리 만들어둔 백설기 시트 위에 예쁘게 올리면 완성이다. “좀 예쁜데?! 나 좀 잘했는데?!” 자화자찬하며 인증사진 100장쯤 찍는 것도 국룰! 과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꽃잎이 한 잎 한 잎 녹아내리는데, 그 달콤한 맛을 음미하던 이남주 팀장의 입가에 웃음이 활짝 피어났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모여 인생을 버티는 힘을 만드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도 그런 버팀목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개성을 담은 이 꽃들처럼 앞으로 우리 팀 앞에 놓인 시간이 아름답게 만개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