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지금은 참 걷기 좋은 때다.
햇살도 적당하고 봄바람도 적당히 불어오니 어디로든
발걸음을 재촉해볼까. 기왕이면 초록빛도 가득하고,
선선한 바닷바람도 불며, 어디든 앉아 쉬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더 좋겠다. 죽도 상화원이 그런 곳이다.
한걸음, 한걸음이 아쉽지 않은 곳, 걷다가 지칠 때는
잠시 앉아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되는 곳.
죽도는 보령의 남포방조제 중간에 있는 섬이다. 원래는 서해상의 섬이었는데, 1999년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이때부터 걸어서 갈 수 있는 섬이 된 것이다. 울창한 대나무숲이 있어서 ‘죽도’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지역 사람들은 ‘대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죽도가 특별한 이유는 비단 ‘걸어서 갈 수 있는 섬’이라는 점뿐만은 아니다. 그 안에 있는 한국식 전통정원, 상화원이 죽도의 특별함을 더욱 배가시켰다. 섬 일부만 정원으로 꾸며 놓은 게 아니라, 섬 전체를 정원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하니 특별하지 않은가. 게다가 지붕형 회랑 아래서 해변일주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상화원이 가진 매력 중 하나다.
입구에서 매표하고 본격적인 상화원 산책에 나서본다. 얕은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면 오른쪽에 회랑이 보이는데, 그 회랑을 따라 쭉 걸으면 바닷가를 벗 삼아 섬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섬 전체를 둘러싼 2km 구간의 지붕형 회랑은 눈비가 내려도 걱정 없이 바다를 따라 걸을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상화원의 상징이 되었다.
포근히 감싸주는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방문자 센터는 꼭 방문해야 한다. 입장권을 보여주면 커피 또는 둥굴레차와 떡을 나눠주기 때문이다. 소박한 간식이지만, 어느 자리에 앉아도 멋진 바다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간식을 받은 김에, 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고, 여유를 부릴 수 있다고 말하는 여행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풍경은 상화원 미리보기에 불과하다. 깊숙이 들어가면 더 황홀한 풍경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무턱대고 여유를 부리는 일은 없길 바란다.
상화원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석양정원과 한옥마을을 향해 걷다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눈에 담긴다.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것 같은 모습의 사슴 떼와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바위 사이에 홀로 앉아 있는 반가사유상이 그 주인공. 산책길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볼거리다. 조각상을 구경하면서 쉬엄쉬엄 걸어오면 석양정원에 다다른다. 석양정원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서해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스폿이다. 시간과 날씨를 계산하고 온다면 황홀한 일몰을 볼 수 있지만, 혹여 타이밍을 놓쳤더라도 괜찮다. 바다 위에서 온 힘을 다해 제 몫을 다 하고 있는 윤슬도 충분히 탄성을 지를만한 풍경이니까.
석양정원을 천천히 지나오면 이제 상화원의 상징과도 같은 한옥마을이 나온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한옥이 점차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지난 십여 년간 전국적으로 가치가 있는 한옥을 찾아다니면서 이건 하고, 복원한 끝에 이루어진 공간이다. 이토록 의미 깊은 공간에 천혜의 섬 죽도의 자연미를 그대로 살리고자 물, 나무, 바람이 조화를 이루는 한국식 정원을 꾸며 놓으니, 그 가치가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한옥마을 가장 높은 만대루에 올라 상화원의 경치를 바라본다. ‘조화를 숭상한다’라는 상화원의 이름 뜻처럼 자연과 예술 작품,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걸 보니, 그 이름이 더 빛나는 듯하다.
충남 보령시 남포면 남포방조제로 408-52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청소역이라는 이름은 조선 말기, 장척면, 오천면, 천동면 일부와 청수면을 통합한 곳을 ‘청소면’이라고 부른 데에서 붙여졌다. 원래는 진죽역으로 영업을 개시했으나, 1988년 청소역으로 역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청소역이 특별한 이유는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근대 간이역사의 건축 양식과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합실 출입구는 박공지붕으로 꾸몄고, 철로쪽 대합실 출입구에는 햇빛 가리개가 달렸는데, 이는 광복 이후의 기차역 건축 양식이다. 철도 개통 이후 지금까지도 운행 중인데, 장항선 간이역 중에 ‘가장 오래된 역’이기도 하다. 역사 바로 옆으로 나오면 보이는 노란색 기차, 초록색 택시 조형물은 영화 <택시운전사>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도 사진 명소로 알려져 있었는데 귀여운 조형물이 생기면서부터 더욱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유명해졌다. 사실 작은 공간이라서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 데는 시간이 그리 소요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면 청소역 주변의 거리를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간판과 거리의 풍경에 추억에 잠길 수 있을 테니까.
충남 보령시 청소면 청소큰길 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