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딱 절반을 지나는 지금. 쉼이 간절해져 동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창밖 풍경이 점점 짙은 초록으로 바뀐 걸 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녹음을 즐기는 사이 기차는 어느새 강릉역에 와닿는다. 역에서 나와 사십여 분 달려 드디어 최종 목적지에 다다른다. 양양 낙산사. 여기서는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발길과 생각을 멈추고, 동해의 자연에 잠시 쉬어가면 그만이다.
두 시간 만에 도착한 강릉역
서울에서 강릉까지는 두 시간 남짓. 예전에 강원도는 멀다는 느낌이 먼저였지만, 이제는 KTX를 타면 금세 도착한다. 시간을 들여야 만날 수 있던 동해가, 이제는 주말에도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여행지가 됐다. 안목해변이나 경포대 해변까지도 강릉역에서 차로 10~15분이면 충분하다.
이렇게 가까워진 데에는 2017년 12월에 개통된 KTX 강릉선 덕분이다. 강릉역은 원래 1962년 영동선 개통과 함께 생긴 역사지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수도권과 강릉을 빠르게 연결하는 KTX 노선이 더해지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현재의 강릉역은 바다를 모티프로 설계됐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곡선형 외관은 잔잔한 파도를 떠올리게 하고, 역사 내부는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 덕분에 시원하게 트여 있다. 동선과 안내 표지 역시 단순한 편. 처음 찾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다.
천년고찰, 낙산사에 오르다
강릉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동해를 마주한 사찰, 양양 낙산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곳은 1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동해를 지켜온 천년고찰.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일주문을 지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상대에 닿는다. 바닷가 절벽 위에 자리한 정자로, 낙산사에서 가장 먼저 동해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끝없이 이어진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어도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기분이다. 양양 8경으로 꼽히는 이유를 단번에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의상대 옆 절벽 끝에는 바다를 향해 몸을 기울인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거센 해풍을 견디며 휘어진 가지의 모습이 마치 수행자가 고개 숙인 듯하다. 300년 넘는 시간을 버텨온 나무. 2005년 대형 산불 속에서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의상대 아래로 시선을 내리면 바다 끝 절벽 위에 자리한 홍련암이 보인다.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붉은 연꽃 위에 나타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 그 전설을 따라 낙산사는 관음성지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바람을 안고 이곳을 찾는다.
동해에서 쉼표를
다시 길을 따라 걷는다. 길목마다 돌탑이 이어지고, 그 위에는 작은 돌들이 조심스레 얹혀 있다. 누군가의 소망이 차곡차곡 쌓인 자리.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 순간 낙산사의 상징인 해수관음상이 눈앞에 나타난다.
낙산사 성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해수관음상은 높이 15m 규모의 거대한 불상으로, 동해를 향해 고요히 서 있다. 활짝 핀 연꽃 위에 선 관음상은 한 손에 물병을 들고, 다른 손은 사람들을 감싸안듯 가슴 앞으로 살짝 들어 올린 모습. 가까이 다가설수록 웅장함보다 평온함이 먼저 밀려온다. 그래서일까. 불자가 아니더라도 이곳을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걸음을 멈추고 관음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잠시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마음속 복잡한 생각들이 멀리 흩어지는 듯한 기분. 낙산사를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푸른색 아닐까. 원통보전 앞에서도, 해수관음상 앞에서도, 의상대와 홍련암으로 이어지는 길에서도 시선 끝에는 늘 푸른 바다가 닿아 있으니까. 바다를 품은 절. 낙산사의 여름이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다.
설온
설온은 온천·목욕탕으로 쓰이던 공간을 그대로 살려 만든 카페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치 오래된 목욕탕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욕탕 타일과 구조를 그대로 활용해 공간 곳곳이 자연스럽게 포토존이 된다. 대표 메뉴는 설온 크림라테. 부드러운 크림과 고소한 커피 맛이 잘 어우러져 편하게 즐기기 좋다. 온천 콘셉트를 담은 설온 온천푸딩은 귀여운 비주얼 덕분에 인증 사진 메뉴로도 인기다. 낙산사 근처에서 색다른 카페를 찾는다면 추천!
강원 양양군 강현면 복골길201번길 58
메밀꽃이 피었습니다
낙산사 근처에 자리한 메밀 요리 전문점이다. 당일 뽑아낸 메밀면으로 냉메밀과 비빔메밀 등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이곳 메밀국수는 자극적인 양념보다 메밀 특유의 담백한 맛을 살린 것이 특징. 시원한 육수와 깔끔한 메밀면 조합이 부담 없이 잘 넘어간다. 바삭하게 부쳐낸 메밀전까지 함께 주문하면 만족감이 더 커진다. 낙산사 구경을 마치고 들러 든든하게 한 끼 즐기기 좋은 곳!
강원 양양군 강현면 안골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