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하천이 품은 세월은 유구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공주 시가지 한복판으로 흐르며 공주의 역사와 함께했다. 여러 이유로 한동안 멈춰있던 제민천의 시간이, 지금은 역사화 문화 그리고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따뜻한 이야기를 품고 다시 흐른다.
가을과 겨울이 만나는 그 사이의 계절에는 어디로 여행을 가야 할지 고민이 된다. 깊은 자연으로 가자니, 하루가 멀게 변덕을 부리는 날씨 때문에 망설여진다. 그래도 지친 일상에서는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에너지를 얻고자,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충남 공주로 향해보는 것은 어떨까. 충청남도 공주는 KTX 역이 있는 데다가, 수도권이나 충청권, 전라권에서도 오가기 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접근성만 좋은 게 아니다. 공주는 백제의 옛 도읍으로 깊은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볼거리가 풍부하다.
대표적으로 백제의 성곽이었던 공산성과 무령왕릉, 공주국립박물관, 제민천 등이 있는데, 이곳들은 공주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요즘의 문화가 더해져 더 오묘하고 이색적인 여행지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제민천 일대는 역사와 요즘의 문화가 공존하는 거리로 떠오르는 중이다. 제민천은 공주시 금학동에서 발원해 금성동에서 금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인데, 시가지 한복판을 남북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한동안은 방치되어 있다가,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통해 다양한 식물과 생물이 서식하는 자연 친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산책로가 잘 되어있는 덕분에 퇴근 무렵이나 주말에 산책하는 주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변화된 제민천 덕분에 공주 원도심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고, 공주사범대와 터미널이 신도심으로 옮겨져 한동안 휑했던 제민천에,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공주시의 노력도 있었다. 포틀랜드의 커뮤니티 주도 도시재생과 민관 거버넌스를 참고해 쇠퇴한 제민천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부단히 애썼다. 그 결과 제민천 역사문화광장, 혁신거점공간을 조성했고, 청년 마을 프로젝트를 통해 독립 서점, 게스트 하우스, 카페, 빵집 등 청년들을 위한 상권을 형성했다. 멈춰있던 하천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단순히 하천이 깨끗해지고, 산책로가 좋아져서 활기를 찾은 건 아니다. 제민천 일대가 공주의 원도심답게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에 이를 수 있었다.
교회 건축사에 높은 가치를 담은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 충청도관찰사가 근무하던 관청 충청감영, 대통사 옛터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 1936년 목구조의 형식으로 지어져 지금은 카페와 전시 공간으로 사용 중인 예술가의 정원까지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들을 만나게 된다. 그저 산책하는 것만 아니라 역사의 한 페이지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이보다 더 많은 역사 공간이 제민천 일대를 지키고 있으니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역사 기행에 나서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다가 지치면 분위기 좋은 카페나, 무인서점에 들러 시간을 보내도 좋다. 제민천의 여유를 쏙 빼닮은 공간들이 골목골목에 넘쳐나니까.
요즘 서울에서 핫하다는 서순라길에 비하면 넓고, 정비가 잘 되어있는 데다가 붐비지 않아서 여유를 부리기에 딱이다. 그렇게 에너지를 충천하고 나면 골목을 다시 걸어보자. 담벼락마다 그려진 정겨운 벽화와 나태주 시인의 따뜻한 시들이 벽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으니까. 시화와 어우러진 시들이 잊고 지냈던 감성을 채워주는 기분이다. 그래도 아쉽다면 1960~70년대 공주 하숙문화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하숙마을이나, 다양한 전시가 펼쳐지는 자연미술과Ko로 발길을 옮겨보자. 레트로한 느낌과 예술 전시로 가득한 문화 향유의 시간이 될 테니.
천천히 동네 산책 나서듯 돌아본 제민천. 처음에는 평범한 마을인 듯싶었다가 마을을 거닐수록 알게 되었다. 이곳의 가치는 깊고도 무한하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의 소박한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공주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를 바라며, 공주 제민천 산책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