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고창

Summer in Gochang

일 년의 반을 열심히 달려왔다. 아직 달려온 만큼 가야 할 길이 남았지만,
쉼 없이 달리다가는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 딱 쉬어가기 좋은 계절,
여름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숨을 골라보자. 푸른 숲과 바다, 짙은 노을과
이야기가 있는 고창에서라면, 쉼도 낭만이 될 테니.

최선주 / 사진 정우철

청보리처럼 푸른 바다가 있는 고창

대부분 ‘고창’하면 ‘청보리’를 떠올리곤 한다. 아무래도 청보리밭이 고창에서 제일 유명한 여행지이다 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다. 특히 올 상반기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배경지로 알려지면서 고창 청보리밭은 더욱더 유명세를 치렀다.
하지만 여름날의 고창에서는 아쉽게도 청보리를 볼 수 없다. 내년을 기약하며 자연의 이치대로 모습을 감췄기 때문. 그럼에도 고창을 찾았다면 실망하지 말자. 청보리만 아니더라도 이곳에는 황홀한 풍경들이 충분하니까.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구시포다. 구시포는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상하면에 위치한 바다다. 아주 오래전에는 새나리불영(새 바닷가의 불같이 일어날 마을)이라는 이름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구시포로 바뀌었다고 한다. 구시포 이름에는 ‘아홉 개의 저자를 먹여 살릴 마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마도 인근의 동호해수욕장까지 포함하면 삼십 리의 바닷길이 갯벌로 쭉 이어져 있으니 아홉 개의 저자가 충분히 들어설 만도 했을 것이다. 그만큼 바다에서 나오는 양식이 풍부해 아홉 개의 저자가 들어서도 배불리 살 수 있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여유로운 구시포의 풍경들

고창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번 기회에 구시포해수욕장을 제대로 알아두기를 바란다. 한 번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이, 해마다 여름이면 다시 찾아올 정도로 매력이 넘쳐나는 곳이니까.
일단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백사장이다. 바닷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내는 백사장은 축구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그래서 유독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뛰어놀다 지치면 자리를 잡고 모래놀이를 하거나, 조개를 잡으며 시간을 보내기에도 그만이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거나 벤치에 앉아 ‘바다 멍’을 즐겨보는 것은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우거진 송림 옆에 자리한 캠핑장에서는 구시포의 매력에 제대로 빠지기 좋다. 소나무 사이에 자리를 잡고, 하루 묵어가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일몰을 무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구시포가 가장 좋은 점은 여유롭다는 것이 아닐까. 여름날의 바다는 보통 붐비기 마련인데, 구시포는 붐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랑한다. 문득, 조용한 바다를 보며 힐링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때, 가장 먼저 생각날 정도로.

조용한 마을에 들어선 책마을해리

구시포만큼이나 여유롭게, 또 조용히 머물다 갈 수 있는 고창의 매력적인 장소가 있다. 바로 ‘책마을해리’다. 책마을해리는 책과 출판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폐교되고 5년이나 버려졌던 곳이, 책을 사랑하는 주인 가족의 손길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단순하게 ‘책만 보고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누구나 책, 누구나 도서관’이라는 모토처럼 이곳에서는 누구나 책을 읽을 수도, 쓸 수도, 만들 수도 있다.
입구의 북카페 ‘책방해리’에서 입장권으로 책을 구매하고 나면, 비로소 책마을해리의 세상이 펼쳐진다. 폐교를 개조해 만든 곳 답게 널따란 운동장에 자리한 재미있는 공간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느티나무 위에 지은 ‘동학평화도서관’은 마치 동화 속에 들어와 책을 읽는듯한 느낌이 든다. 부엉이 모양의 ‘책부엉이도서관’은 책마을해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운동장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색적인 공간에서 책을 보거나, 쉬거나, 사색에 잠겨도 좋다.

책과 함께 써 내려가는 여름날의 이야기

운동장을 지나 위쪽으로 향하면 ‘고전읽기좋은도서관’, ‘버들눈도서관’, ‘책마을책감옥’ 등 더 다양한 공간들이 나온다. 테마별로 공간을 누릴 수 있어 취향껏 머무르면 된다. 많은 공간 중에서도 ‘책숲시간의숲’은 꼭 들러 볼 것. 이곳은 책마을해리에 남은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하지만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구조만 남기고 지금은 30,000여 권의 책들로 온방을 채웠다. 책마을해리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캠프, 강연, 심포지엄, 포럼 등의 행사가 주기적으로 열린다. 책과 함께 온종일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북스테이도 가능하다. 책과 음악, 영화와 자연이 공존하는 책숲에서의 하룻밤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삐걱삐걱 소리가 정겨운 복도를 지나 남은 공간들을 마저 돌아본다. 이 넓은 공간이 온통 책이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들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선사하고자 제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책과 출판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는 곳.

책숲시간의숲은
책마을해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책숲시간의숲은
책마을해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이색적인 공간에서
책을 보거나,
쉬거나,
사색에 잠겨도 좋다.

TIP. 기차 타고 고창 가는 법!

고창에는 기차역이 없다. 하지만 KTX를 이용해 ‘정읍역’에 내리면 된다. 정읍과 고창은 차로 30여 분 남짓이면 쉽게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궁화호, 새마을호도 마찬가지. 참고로 시즌에는 고창 청보리밭, 선운사, 라벤더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관광열차, 국악와인열차도 있다. 보랏빛이 매력적인 관광열차로 시즌마다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