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국 꽃길 따라, 마침내 봄

Gampo in Gyeongju

두껍기만 하던 겨울옷을 고이 접어 옷장 안에 넣었다.
추워서 귀찮기만 하던 외출이 다시 하고 싶어졌다.
몸도 마음도 가벼운 걸 보니, 봄은 봄인가 보다. 이제 꽃을 찾아
떠나기만 하면 더 완벽한 봄이 되지 않을까.
이른 봄 한 송이를 틔우러, 경주 감포로 갔다.
조금 먼저 맞는 경주에서의 봄이 어쩐지 맘에 쏙 든다.

최선주 / 사진 정우철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감포항

감포는 동궁과 월지, 첨성대, 대릉원 등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경주의 명소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조용함과 정겨움이 묻어나는 동네다. 게다가 올해로 개항 100주년을 맞이하는 감포항이 자리해 어민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서 엿볼 수 있다.
감포항 초입에서부터 송대말등대까지 걷다 보면, 도시에서는 보지 못한 진귀한 풍경들이 발걸음을 절로 멈추게 한다. 막 뱃일을 끝내고 잡은 생선들을 거둬들이는 어부들의 모습, 행여 먹이라도 하나 낚아챌 수 있을까 하여 배 위로 모여든 갈매기 떼의 모습에 ‘아, 여기가 바로 어촌이구나’라는 게 실감이 날 정도다. 갓 잡아 올린 멸치를 망에서 거르는 작업에 홀려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등대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다가 다시 또 멈칫하게 되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감포항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들을 판매하는 활어 위판장 때문. 이름 모를 해산물들이 즐비한 풍경을 보는 것은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닐까.

봄날, 감포 깍지길을 걸어볼까

위판장을 지나 빨간 송대말방파제에 다다르면, 감포항과 그 주변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주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과 잔잔한 바닷바람을 머금은 항구의 모습이 어우러져 평온함을 자아낸다. 짧고도 긴 감포항 산책이 끝나면, 근처에 즐비한 해산물 맛집에서 배를 든든히 채워볼까. 이곳에서는 가자미와 아귀로 만든 요리가 별미로 손꼽히고 있다.
배를 든든히 채웠다면 마을 깊숙이 들어가 마을의 매력을 제대로 누려볼 차례다. 감포항 옆에 자리한 감포 해국길은 감포 깍지길의 제4구간이다. 감포 깍지길은 감포항을 중심으로 총 80km에 이르는 해안탐방 둘레길인데, 동해안의 멋진 풍경들이 넘쳐나고, 사람과 바다가 깍지를 낀 길이라는 뜻에서 ‘깍지길’이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해안을 따라 걷는 길’, ‘자전거를 타고 도는 길’, ‘고향을 회상하며 걷는 길’, ‘고샅(골목)으로 접어드는 길’, ‘드라이브하며 보는 길’, ‘명상에 잠겨 걷는 길’, ‘소리에 끌려 걷는 길’, ‘배를 타고 도는 길’ 등 총 8개의 구간으로 이뤄져 봄날의 걷기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해국과 함께 맞는 봄

고샅(골목)으로 접어드는 길에 자리한 해국길은, 좁은 골목골목을 지나며 담벼락에 그려진 해국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길이다. 해국길에 들어서기 전, 해국에 대한 사실을 알고 가면 더 좋다. 국화과인 해국은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다 보니 보통의 국화보다는 키가 작은 편이라고 한다. 바닷가 마을 감포에 해국이 많이 그려진 건 휘몰아치는 바닷바람과 파도로부터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해국길을 걷는 방법은 딱히 없다. 그래도 순서를 정해서 가보고 싶다면 해국골목-해국계단-옛 건물 지하창고-다물은집-1925감포-우물샘-소나무집 순으로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중에서도 옛 건물 지하창고는 대피소 겸 지하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이고, 다물은 집은 일본식 가옥이다. 1920년대 개항한 뒤 일본인이 이주해 어촌이 형성된 곳이 감포라는데, 현재는 이곳에서 거의 유일하게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곳은 빼먹더라도 감포 해국길에서 여기만큼은 빼먹으면 안 된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큰 해국을 만날 수 있다는 해국계단이다. 커다란 해국계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이곳의 필수 코스다. 그런 뒤에는 계단 꼭대기에 올라서 보자. 바다와 감포항이 어우러진 동네의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골목길
담벼락에 새겨진
해국을
발견하는 재미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견뎌
키가 작은 해국

해국의 꽃말은 기다림이랬다. 시린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을 기다렸던 우리의 갈증을 풀어주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이른 봄, 저마다의 크기를 간직한 해국을 마주하는 순간 그토록 기다렸던 봄이 성큼 왔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경주에서 찾은 기차 이야기
경주문화관 1918

경주문화관 1918은 2022년 12월에 문을 연 문화공간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경주역으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면 믿어지겠는가. 하지만 이곳은 동해선 복선전철 개통에 따른 경주 시내 구간 철도 이설로 인해 폐역을 맞이하게 됐다. 이로써 여객 기능은 지금의 경주역이 수행하게 된다. 역사성을 고려해 이름을 그대로 경주역, 신경주역으로 유지하고자 했으나 경주역이 확실한 경주의 관문역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생기면서, 옛 경주역은 경주문화관 1918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신경주역이 경주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다양한 전시와 플리마켓과 자개 그림 그리기, 전통 부채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시실 뒤편에는 역 플랫폼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개방되지 않는다.